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70만 부 기념 리커버)
30개국에서 베스트셀러를 기록한 알랭 드 보통의 대표작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가 70만 부 판매를 기념하여 산뜻한 표지로 새롭게 출간되었다. 런던과 파리를 오가는 비행기에서 우연히 만나 순식간에 사랑에 빠진 두 젊은이에 관한 이 소설은 연인이라는 특별한 관계와 사랑의 감정을 놀라운 깊이로 그려내며 출간 직후 전 세계의 독자들을 사로잡았다. “사랑에 빠지는 행위는 자기 자신의 허점을 넘어서고 싶어하는 인간 희망의 승리이다.” 알랭 드 보통
70만 부라는 경이로운 판매고를 올린 이 책을 집어 들었을 때, 나는 에리히 프롬의 <사랑의 기술> 과 같은 논픽션(Non-fiction)장르를 기대했다. 당연히 알랭 드 보통의 자전적 수필인 줄 알았으며, 마지막 책장을 덮는 순간까지도 수필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영문 제목조차 'Essays in Love' 가 아닌가. 'Essay'는 특정 주제에 대한 개인적 견해와 분석을 논리적으로 기술한 산문이다. 소설보다는 수필에 가까운 말이다. 소설이라는 말은 책표지에도 추천사에도, 그 어디에도 없었다. 소설인지 수필인지를 알고 읽는 것은 독자에게 매우 중요한 문제다. 만약 소설임을 알았다면 미성숙한 주인공들의 사랑을 조금 더 측은하고 너그러운 마음으로 지켜봤겠지만, 수필로 받아들인 나에게 이들의 행태는 비판의 대상이 될 뿐이었다.
예를 들어 책에서 하이힐에 대한 취향차 때문에 유리창을 깨고 싸우는 에피소드가 나온다. 그리고 이를 마치 연인들 간의 웃긴 헤프닝정도로 그리고 있다. 나는 갈등이 폭력으로까지 번지는 이 장면을 매우 비판적으로 읽었으나 소설이 되어버리는 순간 나의 비판은 아무의미가 없어져 버렸다.
결국 작가와 출판사에게 농락당했다는 허탈감이 밀려왔다.
그냥 주인공과 클로이의 사랑이 얼마나 치기어린 사랑인지에 대해 적어보고자 한다.
1. 감정의 롤러코스터는 결코 사랑이 아니다
주인공들의 미성숙함은 클로이의 대사에서 정점에 달한다.
내가 너한테 꺼지라고 말하면 너는 나한테 뭘 집어던지기는 하지만 떠나지는 않거든. 그게 안심이 돼.
폭력이 당연시되고, 롤러코스터 같은 감정의 동요를 '진짜 사랑'이라 착각하는 모습은 전형적인 미성숙한 사랑의 특징이다. 내가 생각하는 진정한 사랑은 결코 감정에 지배당하는 상태가 아니다. 오히려 휘몰아치는 감정을 스스로 지배하고,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는 '의지' 의 영역이다.
2. 사랑에 대한 철학적 논제의 허점
책에서 장황하게 늘어놓는 철학적 수사들도 사실 매우 얄팍하다. 이러한 얄팍함을 작가는 비판하고 있는 것 아닌가도 싶다.
- 존재의 명명과 승인: 연인이 나를 정의해줄 때 존재의 의미를 찾는다는 논리는, 스스로 꽃이 되지 못하고 남이 불러주어야만 꽃이 되는 수동적인 자아 정체성의 한계를 보여준다.
- 마르크스주의적 자기 비하: 나를 사랑하는 상대의 안목을 의심하는 태도는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만이 남을 사랑할 수 있다"는 프롬의 대전제에 정면으로 위배된다.
- 언어적 투쟁: 싸움을 소통의 방식으로 미화하는 것은 그저 감정 조절 실패에 대한 합리화일 뿐이다.
3. 고요한 연못과 같은 사랑의 실체
진정한 사랑은 고요한 연못과 같다. 돌이 날아와 잠시 파동이 일지언정, 그 파동에 휩쓸려 연못 전체가 뒤집히지는 않는다. 이내 그 파동을 흡수하고 다시 평온을 되찾는 자정 능력이 바로 사랑의 실체다.
마무리
소설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순간 내가 퍼부었던 비판들이 갈 곳을 잃은 듯 허망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