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하다는 착각
또 다시 ‘공정’이 화두다. 언론 미디어를 통해, 부유층과 빈곤층, 청년과 장년, 정치인의 입을 통해 끊임없이 쏟아져 나온다. 기업은 정규직ㆍ비정규직 논란에서 비롯된 ‘공정 채용’ 문제로 혼란에 빠져 있고, 정치권에선 ‘공정경제3법’과 ‘재난지원금’ 등에 대한 각기 다른 해석으로 떠들썩하다. 대통령은 “하나의 공정이 또 다른 불공정을 부르는 상황”을 언급하며 어려움을 토로하기도 했다. 이렇듯 ‘공정’이라는 하나의 화두를 두고 각계각층이 충돌하고
마이클 샌델의 『공정하다는 착각』은 현대 사회의 능력주의가 가진 맹점을 파고들며 근본적인 물음을 던진다. 샌델은 능력주의가 승자에게는 오만을, 패자에게는 굴욕을 주어 공동체를 파괴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그의 진단과 대안에는 현실의 생존 법칙과 인간의 본성을 간과한 치명적인 모순이 존재한다.
능력주의는 본능이자 자연의 법칙이다
샌델은 능력주의를 사회적 병폐로 묘사하지만, 능력이 뛰어난 개체가 더 많은 자원과 권력을 차지하는 것은 생명체의 DNA에 새겨진 본능이다. 수렵채집 시대에 사냥을 잘하는 개체가 리더가 되고, 무리 생활을 하는 범고래나 침팬지 집단에서 힘세고 똑똑한 개체가 우두머리가 되는 것은 집단의 생존에 가장 유리한 방식이기 때문이다. 이는 "리더가 나보다 우월하고 능력이 뛰어나기 때문에 따른다"는 집단적 동의에 기반한다.
스포츠는 이를 증명하는 가장 완벽한 예시다. 대중은 압도적인 퍼포먼스를 보여주는 스포츠 스타에게 열광하며, 능력에 따라 주어지는 그들의 천문학적인 연봉이나 특권에 토를 달지 않는다. 결국 문제가 되는 것은 능력주의를 방해하는 부정 입시나 청탁 같은 불법과 편법이지, 능력주의 그 자체는 악이 아니라 자연스럽고 합리적인 시스템이다.
승자의 오만과 운의 인정
승자의 오만 문제를 시스템적으로 완전히 통제하기란 불가능하다. 가장 우려되는 지점은 사회의 룰과 제도를 만드는 '승자'들이 패자를 '게을러서 실패한 자'로 낙인찍어 복지 정책의 필요성을 부정하는 것이다.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현대 사회의 지성들과 승자들은 이미 '운'의 개입을 인정하며 스스로를 경계하고 있다. 워렌 버핏이 자신의 성공을 '미국에서 태어난 운(ovarian lottery)'으로 돌리거나, 책 『아웃라이어』에서 빌 게이츠의 성공 요인으로 부유한 집안과 고등학교의 컴퓨터 보급이라는 환경적 행운을 꼽은 것이 그 예다. 성공에는 개인의 노력뿐만 아니라 운과 환경이 절대적으로 작용한다는 인식이 점차 보편화되고 있다.
패자의 절망은 능력의 획일화에서 온다
패자의 절망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패자가 어떻게 양산되는지 그 근본을 고찰해야 한다. '능력'이라는 단어는 엄청나게 넓은 스펙트럼을 가진다. 그러나 우리는 능력을 오직 '공부(수학능력)' 하나로만 규정한다.
수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진짜 재능을 발견하지도 못한 채 획일화된 잣대 아래서 낙오자로 전락하는 구조가 가장 큰 문제다. 따라서 패자의 발생을 최소화하려면, 다양한 교육 기회를 제공하여 각자의 적성을 발견하게 돕고, 이미 발생한 절망에 대해서는 튼튼한 복지 정책으로 보호하는 사회적 노력이 필요하다.
'겨우 4~7%'? 관점의 차이와 믿음의 힘
책에서 샌델은 미국의 최하위 계층이 최상위 계층으로 올라가는 비율이 4-7%라며, 이 숫자 앞에 '겨우'라는 수식어를 붙인다. 그러나 이는 물이 '반밖에' 없는지, '반이나' 있는지를 따지는 정답 없는 논쟁일 뿐이다. 누군가의 눈에는 "최하위층에서 최상위층으로 올라가는 비율이 4-7%나 된다"는 상당히 높은 수치로 보일 수 있다.
진짜 문제는 '노력해도 의미 없다', '아메리칸 드림은 허상이다'라는 패배주의적 분위기가 사회에 팽배해질 때 발생한다. 만약 능력주의에 대한 사회적 믿음이 완전히 무너진다면 이 수치는 어떻게 변할까? 사람들이 더 이상 노력을 믿지 않고 체념하게 되면서, 샌델이 '겨우'라고 불렀던 47%의 비율조차 어느 순간 고작 12%로 추락하고 말 것이다. 불완전하더라도 '노력하면 성공할 수 있다'는 믿음 자체가 역설적으로 그나마의 계층 이동을 가능하게 만드는 원동력인 셈이다.
샌델의 위선과 공허한 대안
가장 실망스러운 부분은 샌델이 제시한 대안과 그의 행보가 보여주는 짙은 모순이다. 그는 능력주의의 대안이랍시고 '대학 입시 제비뽑기(추첨제)'라는 허무맹랑한 헛소리를 내놓는다.
더욱 기만적인 것은 샌델 본인이 '하버드 대학교 교수'라는 능력주의의 끝판왕 타이틀을 달고, 그 기득권을 이용해 막대한 수익을 올리고 있다는 점이다. 본인은 펜과 마이크로 엄청난 자본을 끌어모으면서, 그것이 정말 100% 사회에 기여하는 육체노동인지 스스로에 대한 성찰은 보이지 않는다. 그런 상태에서 실물 경제와 금융 거래를 비판하는 것은 전혀 설득력이 없다.
마무리
능력주의의 폐해를 꼬집는 샌델의 진단 일부는 타당할지 모르나, 인간의 본성을 부정하고 비현실적인 대안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이 책은 명확한 한계를 지닌다. 진정한 공정함은 능력주의를 폐기하는 것이 아니라, 공정한 경쟁을 저해하는 편법을 단속하고, '능력'의 잣대를 다양화하며, 스스로의 성취에 운이 작용했음을 인정하는 겸손함을 통해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