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상실, 사랑 그리고 숨어 있는 삶의 질서에 관한 이야기)
‘방송계의 퓰리처상’ 피버디상 수상자 룰루 밀러의 사랑과 혼돈, 과학적 집착에 관한 경이롭고도 충격적인 데뷔작! “저의 바람은 당신이 이 책을 읽고 난 뒤 이전과는 조금 다르게 세상을 바라보는 것이에요.”_룰루 밀러 ‘방송계의 퓰리처상’ 피버디상 수상자 룰루 밀러의 사랑과 혼돈, 과학적 집착에 관한 경이롭고도 충격적인 데뷔작! 집착에 가까울 만큼 자연계에 질서를 부여하려 했던 19세기 어느 과학자의 삶을 흥미롭게 좇아가는 이 책은 어느 순간 독자들을 혼돈의 한복판으로 데려가서 우리가 믿고 있던 삶의 질서에 관해 한 가지 의문을 제기한다. “물고기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은 엄연한 하나의 사실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또 무엇을 잘못 알고 있을까?” 하고 말이다. 누군가에게는 이 질문이 살아가는 데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세상을 바라보는 “진실한 관계들”에 한층 가까이 다가가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에게는 분명 이 책이 놀라운 영감과 어느 한쪽으로도 치우치지 않는 폭넓은 시야를 제공해줄 것이다.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세계라는 거대한 구조 속에서 ‘물고기는(그리고 우리는) 어떤 존재인가’에 관해 우리의 관념을 뒤집어엎으며 자유분방한 여정을 그려나간다. 사랑을 잃고 삶이 끝났다고 생각한 그 순간 ‘데이비드 스탄 조던’을 우연히 알게 된 저자는 그가 혼돈에 맞서 싸우는 것을 전혀 두려워하지 않는 모습에 매혹되어 그의 삶을 추적해나가기 시작한다. 저자 역시 이 세계에서 “혼돈이란 ‘그런 일이 일어난다면’의 가정의 문제가 아니라 ‘언제 일어나는가’의 시기의 문제”이며, 어느 누구도 이 진리를 피할 수 없다고 생각해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조던의 이야기는 독자들을 전혀 예상하지 못한 곳으로 이끌며, 이윽고 엄청난 충격으로 우리의 눈을 번쩍 뜨이게 만든다. 룰루 밀러가 친밀하면서도 독특한 방식으로 들려주는 이 책은 과학에 관한 고군분투이자 사랑과 상실, 혼돈에 관한 이야기다. 나아가 신념이 어떻게 우리를 지탱해주며, 동시에 그 신념이 어떻게 유해한 것으로 변질될 수 있는지를 알려준다. 이 책 속 의문들을 하나하나 파헤쳐나가다 보면 독자 여러분도 그 이면에 숨겨져 있는 더 깊고 더 특별한 인생의 비밀 한 가지와 만나게 될 것이다.
1. 닮은꼴의 발견: 괴짜와 사명감
처음 이 책을 펼쳤을 때, 나는 주인공 데이비드 스타 조던에게 묘한 동질감을 느꼈다.
수많은 어종에 이름을 붙이고, 지진으로 유리병이 깨지는 시련 속에서도 묵묵히 바늘을 들어 물고기의 살점에 태그를 꿰매는 그의 모습. 그 광기 어린 집착과 사명감은 어딘지 모르게 나와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 역시 수의사이자 개발자라는, 동료들 사이에서는 조금 '괴짜' 같은 길을 걷고 있다. 주위에서는 "왜 그거 하고 있냐?"는 의문을 종종 던지지만, 나는 그런 잡음에 신경 쓸 여유가 없다. 무너진 유리병 속에서도 물고기의 살점에 묵묵히 이름표를 꿰매던 조던처럼, 나에게는 완수해야 할 사명이 있기 때문이다. '벳툴(VETOOL)' 을 직접 만들며 기존의 질서를 재편하고 나만의 체계를 세우려는 이 고독한 여정 위에서, 나는 그저 조던과 같이 묵묵히 코드를 적어 내려갈 뿐이다.
2. 당신도 예외는 아니다: 우생학은 절대악인가?
중반부를 넘어 조던이 스탠포드 부인을 독살(100% 독살이라고 말하고 있지는 않다)하고 우생학의 선봉에 서는 대목에서 작가 룰루 밀러는 그를 '악마화'하기 시작한다. 하지만 나의 시각은 조금 다르다. 조던 개인의 사악함에 집중하기보다, 나는 '인간이라는 종의 본능' 에 주목했다.
우리는 모두 본능적으로 우생학적인 사고를 한다.
갓난아이들은 본능적으로 못생긴 인형보다 귀엽고 예쁜 인형을 선호한다.
우리는 길거리에 노숙자들을 보면서 그들의 성장 환경보다는 게으르기 때문에, 지능이 떨어지기 때문에 저러고 있을 거라 생각한다.
히틀러, 그리고 학계의 정점에서 권력을 쥐었던 조던까지. 잘못된 신념과 권력이 만나는 순간, 타인의 삶을 가위질하는 괴물이 탄생한다.
3. 선별의 모순: 인간이 휘두르는 객관성이라는 칼날
우월한 것을 선택하려는 인간의 본능 자체는 잘못되지 않았다.
그러나 문제는 이 '우월함'이라는 가치가 결코 객관적일 수 없다는 데 있다.
태아 검사에서 유전적 질환이 발견되었을 때 행해지는 선택(유산, 중절)은 과거의 우생학과 본질적으로 무엇이 다른가?
이 아이가 태어나면 부모의 삶이 어려워지기 때문에 이 아이는 태어나지 말아야한다는 주장은 타당한 것일까?
유전적 열등함을 이유로 불임 시술을 강제했던 과거와, 유전적 결함을 이유로 생명을 선별하는 현재의 기준은 과연 객관적인가? 결국 문제는 '기준을 인간이 정한다' 는 오만함에 있다.
나는 인종차별주의자도, 우생학 지지자도 아니다. 다만, 우월함과 열등함이라는 잣대는 결코 객관적일 수 없음을 지적하고 싶을 뿐이다. 인간이 세운 분류 체계는 언제나 불완전하며, 그 빈틈을 메우기 위해 휘두르는 칼날은 결국 폭력이 된다.
4. 파괴된 바벨탑 너머: 조던의 공과(功過)를 껴안는 법
룰루 밀러는 '어류'라는 분류가 과학적으로 존재하지 않음을 깨달았을 때, 조던이 평생 쌓아 올린 바벨탑이 무너졌다고 말한다. 하지만 나의 생각은 다르다.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현대 분류학이 밝혀낼 수 있었던 것조차, 아이러니하게도 조던이 평생을 바쳐 일궈온 분류학적 토대가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렇기에 작가의 악마화는 나에게 온전히 통하지 않았다. 나는 조던이라는 괴짜의 인생을 통해 그의 선함과 악함 모두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였다. 작가가 조던을 해체함으로써 자신의 삶을 구원받으려 했다면, 나는 한 인간이 가진 입체적인 공과(功過)를 더 확장된 시각에서 바라보고자 했다.
동시에 우리가 '열등하다'고 치부했던 것들이 사실은 각자의 자리에서 치열하게 생존하고 있는 고유한 존재들이라는 룰루의 메시지에도 깊이 공감하는 바이다.
하지만 여기서 한 가지 의문이 남는다. 우월한 것을 택하려는 인간의 본능이 죄가 아니라면, 우리는 이 '선별의 비극'을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가?
인간에게 권력이 쥐어지면 반드시 타락하고 잔인해진다.
그래서 우리는 스스로가 정한 '기준'이 언제든 틀릴 수 있음을 인정하는 지독한 겸손을 가져야 한다.
또한, 그 누구도 타인의 생존 가치를 단칼에 베어낼 수 있는 '절대 권력' 을 소유하지 못하도록 끊임없이 경계해야 한다.
조던의 실패는 자신의 분류가 '절대적 진리'라고 믿으며 타인의 삶을 지배하려 했기 때문에 발생했다.
완벽한 정답은 없을지라도, 오만함을 버리고 끊임없이 자신을 의심하는 것만이 우리가 괴물이 되지 않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일지도 모른다.